<통조림 학원>을 읽고 by 사고혁명

아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통조림 학원>을 읽었다. 정말 오랜만에 읽게 된 어린이 책이었는데, 그 내용은 어른들도 깊이 생각해 볼만하다. 기억에 대해, 다양함에 대해, 그리고 아이들의 주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모든 기억은 소중한 기억이다. 

승환이는 아픔을 가진 아이였다. 그 아픔으로 인해 좋지 않은 습관도 갖게 됐다. 책에 등장하는 그 누구보다 아픈 기억을 잊고 싶었을 수 있다. 그러나 승환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통조림을 먹고 기억을 잃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 것을 싫어하는 탓에 먹지 않았던 것이지만, 통조림의 효과를 알고는 일부러 먹지 않았다. 승환이의 아픈 기억은 승환이가 그리워하는 추억과 닿아 있었다. 

 승환이 누나는 어떤 사고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교통사고였던 듯하다. 승환이는 그 뒤로 자신도 모르게 도둑질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초콜릿을 훔치다가 나중에는 다른 것들도 훔치게 되었다. 원래 승환이는 단 것을 매우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누나가 단 것을 먹지 말라고 항상 말해왔고 그 누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단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 매우 좋아하던 초콜릿은 어쩔 수 없었고 결국 습관처럼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이다. 이를 본 승환이의 아빠, 엄마는 마음이 매우 아팠지만 승환이 앞에서는 모른 체했다. 대신 승환이가 훔친 물건의 가게를 돌아다니며 물건 값을 대신 지불해 주었다. 승환이 앞에서 일부러 모른 체했던 태도는 승환이에게 딱딱하게 느껴졌고 그것은 오히려 아빠 엄마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삐에로가 슬픈 기억을 잊는 통조림을 계속 승환이에게 먹이려 했지만, 승환이는 먹지 않았다. 누나를 잊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승환이에게 누나는 슬픔과 그리움이 함께 있는 기억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슬픔이 있고 그래서 나쁜 습관도 생겼지만 그것을 지우고자 한다면 누나에 대한 그리움도 지워졌을 것이다. 그래서 승환이는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다. 

 윤아에게 승환이의 습관이 옮겨졌을 때 승환이는 그제서야 그 습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습관에 대해 윤아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도둑질을 몰래 뒤에서 무마시켜 주었던 어머니의 자신에 대한 관심도 알게 되었다. 승환이에게 필요한 것은 슬픈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일이었다.


다양함, 그 아름다움

 삐에로는 모든 아이들의 슬픈 기억과 나쁜 습관을 없애고 동일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다. 누가 봐도 모범적이고 좋은 성적을 내고 공장에서는 동일한 작업을 하며 군말없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그런 사람이다. 아이들은 그런 삐에로에 대항했다. 통조림을 만드는 공장에서의 아이들을 본 승환이와 혜리는 무엇인가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삐에로의 통조림들을 다 열어 버렸다. 아이들이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모두 입을 닫고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승환이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소름끼치는 공포마저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조화롭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모든 것이 똑같을 때 조화롭다고 느끼는가? 한 가지 색으로 칠해진 스케치북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하는가? 그렇지 않다. 다양한 색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조화롭고 아름답다. 기억을 되찾은 아이들의 모습이 그랬다. 


선택의 자유

 많은 아이들 중 한 아이는 기억을 찾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했다. 너무나 나쁜 기억이어서 너무나 아픈 기억이어서 통조림을 열지 않는다. 그것을 보고 혜리는 그것도 그 아이가 스스로 한 선택이라는 말을 한다. 통조림을 열 때에도 아이들의 논리는 나쁜 기억을 잊는 것도,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도 자신이 선택하겠다는 것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심겨진 본성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기억, 그리고 망각에 대한 자유는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다. 모든 기억은 이야기의 좋은 소재는 되지만 통일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망각이 필수적이다. 그 망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면 그 역시 우리에게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가진 그 사람의 좀더 근본적인 태도와 성향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정서와 습관과 목표와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을 낳는다. 따라서 망각에 대한 선택의 자유는 자아가 형성되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승환이는 누나를 잃은 아픔만 가지고 있지 않다. 도벽이라는 나쁜 습관만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을 삼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인 관점,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고 항상 지켜보고 있었다는 깨달음, 잘못을 직시하고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모두 승환이가 선택한 기억, 이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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