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기독교 강요' : 1.6.1-1.7.5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데 필요한 성경과 그 권위 by 사고혁명

1.6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데에는 성경이라는 안내자와 교사가 필요함

1.6.1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이끌림 받기 위해 다른 도움이 필요한데, 바로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모든 피조물 속에서 보여 주시지만 ‘사람이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로 올바로 이끌림을 받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한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우둔함을 몰아내고, 참되신 하나님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성경인 것이다.’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등 족장들 역시 이러한 도움을 받아 불신자와는 다른 하나님을 아는 친밀한 지식(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을 제외한다 하더라도)을 갖게 되었다.

- 중요한 것은, 인간의 타락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서 말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칼빈은 역설하고 있다.

 

1.6.2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는 족장들에게 주셨던 동일한 말씀을 공적인 기록으로 남기시기를 기뻐하셨다. 이를 위하여 율법이 반포되었고, 후에 선지자들이 율법의 해석자들로서 추가되었다.’ 성경은 유일하신,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증표들과 표지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자연이라는 이 지극히 영광스러운 극장에 관객으로 앉아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두 눈으로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큰 유익을 얻게 해’준다. ‘성경의 제자가 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올바르고 건전한 교리를 조금도 맛볼 수 없다.’

 

1.6.3 성경이 없이는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음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데로 빠지기 쉽고 온갖 오류에 이끌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주의 지극히 아름다운 조화 속에 새겨진 자신의 형상이 효과를 충분히 내지 못할 것을 미리 아시고서, 자신이 유익한 교훈을 주시기를 기뻐하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말씀으로 도움을 주셨다.’ 따라서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목표에 이를 수가 없다. 말씀 안에서 절뚝거리며 걷는 것이 밖에서 전력질주 하는 것보다 낫다.

- 칼빈은 동시에 시편 93, 96, 97, 99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를 다스리시는 권능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정당한 주권을 유지하는 근간이 되는 교리’로 이해한다. 적어도 96, 97편에서는 문맥상 칼빈의 견해가 맞는 듯하다.

 

1.6.4 말씀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시 19:1-2),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7-8). 이 말씀의 의미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과 땅을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을 찾도록 하는 일이 전혀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말씀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학교가 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사마리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며 오직 유대인들만이 참되신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말씀(요 4:22)’ 하신 것도 이와 같은 의미이다.

 

1.7 성령의 증거가 성경의 권위의 확립에 필수적임. 성경의 신빙성이 교회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논리는 사악한 거짓임

1.7.1 성경의 권위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

- 말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 칼빈은 말씀의 도움을 받기 전에 말씀의 권위를 탐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리를 오직 성경의 기록 소게 보존하사 영구히 기억하게 하기를 기뻐하셨으므로(참조 요 5:39), 성경을 하늘로부터 온 것으로 여길 때에야 - 마치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직접 들리는 것처럼 여길 때에야 - 비로소 신자들이 성경의 완전한 권위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동의가 있어야만 성경이 무게를 갖는다’는 생각은 오류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이며 교회의 동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1.7.2 오히려 교회가 성경에 근거하고 성경은 스스로 증거함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음(엡2:20)’으로 반박한다 하더라도 교회가 시초부터 선지자들의 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먼저 받아들인 것이 확실하므로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교회는 다만 성경이 하나님의 진리임을 인정하며 또한 주저 없이 성경을 높임으로써 그 경건한 의무를 다한 것뿐인 것이다.’ 성경은 그 스스로 ‘그것이 진리라는 명확한 증거를 충만히 드러낸다.’

 

1.7.3 아우구스티누스의 진술은 반론의 근거가 될 수 없음

‘교회의 권위에 감동을 받지 않았다면 자기는 복음을 믿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진술’은 ‘그저 교회의 일치된 견해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복음이 아무리 확실하다 하지라도 불신자를 이끌어 그리스도께로 오게 할 수가 없다는 점을 가르치는 것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또한 다른 곳에서 ‘교회 전체의 일치된 견해를 자주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성경에 부여하는 그 권위가 사람들의 판단이나 결정에 의존한다고 가리칠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1.7.4 성령의 내적 조명이 필수적임

‘성경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 속에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선지자들과 사도들도 그들의 탁월함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제시하여 그 이름으로 온 세상을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성경이 진리라는 확신의 근거를 인간의 추리나 판단, 혹은 이성보다도 더 높은 것에, 즉 성령의 은밀하신 증언에 두어야 할 것이다.’

‘논쟁을 통해서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세우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물론 믿지 않는 자들은 어떤 합리적인 증거를 요구하지만 ‘모든 이론을 다 합친 것보다도 성령의 증언이 훨씬 더 훌륭하다.’ ‘성령께서 경건한 자들의 믿음을 확증하시는 보증이시며 인이시고(고후 1:22) 따라서 성령께서 마음에 빛을 조명하여 주시기까지는 그들이 언제나 의심의 바다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닐 수밖에 없다.’

- 불신자들이 성경 이외의 다른 논리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믿음과 경건은 성령의 조명에서 오기 때문에 다른 것 하나님의 말씀 이 외에 다른 것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1.7.5 성령의 내적 증거의 효과

그러므로 ‘성령께서 내적으로 가르침을 주신 사람들은 진정으로 성경을 신뢰’하고 ‘성경이 과연 스스로를 확증하므로 성경을 감히 증거와 이론에 예속시켜서는 안 된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조명을 받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의 입 그 자체로부터 우리에게 흘러나온 것임을 완전히 확신’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기꺼이 하나님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 성경은 스스로를 확증하므로 다른 이론과 증거로 성경을 증명하려해서는 안 된다. 오직 성경만이 가장 권위 있으며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스스로를 증명하게 해야 한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도 성경보다 앞설 수 없다. 또한 성령의 조명으로만 성경을 인정하게 되므로 성령의 조명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성경을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성경은 택자들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깨달음의 보화를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만 보존하시기를 기뻐하셨다면, 무수한 사람들이 그렇게도 무지하고 어리석다는 것이 결코 놀랍거나 불합리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다(참조, 마 13:11).’

-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만 성경을 기록하셨다. 또한 그것을 기뻐하셨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자들은 어리석게 될 것이고(롬 1:22),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은 부끄럽게 될 것이다(고전 1:27). 오직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으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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