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기독교 강요': 1.1.1 - 1.5.15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의 오류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에 이르지 못하며 절대 핑계치 못한다. by 사고혁명

1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

1.1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 그 연결의 본질

1.1.1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향하게 함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께는 거룩하며 선하고 의로운 것들이 있으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복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비참한 것과 수치스러운 것, 더러운 것 밖에 없다. 우리에게 있는 것과 하나님께 있는 것이 대조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모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만족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모른다면 그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다. 즉, 자신을 아는 지식이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 칼빈은 인간의 본연의 비참함, 더러움, 연약함, 결핍 등을 가정하고 있고 인간의 이러한 면모를 바르게 알아야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자신, 인간을 바르게 알 수 있는가?

 

1.1.2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 자신을 바로 알게 함

자기 자신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는 우리의 부패성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도 왜곡시키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만이 모든 판단의 유일한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패되고 왜곡된 시각은 우리 스스로를 의로운 것처럼 지혜있는 것처럼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인 것처럼 상상하게 된다.

- 칼빈은 앞서 기본 가정으로 자신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구분하고 자신을 아는 지식을 바로 알아야 하나님을 찾게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신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런 순환적 논증에 칼빈의 의도가 숨어있는 듯하다. 결국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에서 시작하여야 하나 인간은 부패하였으므로 자신을 바로 알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찾고자 할 것인가?

- 그렇다면 바른 기준으로 볼 때 인간은 어떠한가?

 

1.1.3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인간의 모습

완전하고 유일한 표준이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인간은 비천함과 우둔함과 무능과 부패를 깨닫고 거의 죽은 것 같이 된다.

- 칼빈의 해석에 의하면 이사야 6:2에서 스랍(크리스챤다이제스트 기독교 강요에서는 '그룹'이라고 잘못 나온 듯함)들이 날개로 자신을 가린 것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경외함을 표현한 것이다.

- 칼빈은 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1.2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그를 아는 지식은 어떤 목적을 이루는가

1.2.1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경건

- 앞에서 나온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 사이의 순환을 끊기 위해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역시 우리의 신앙과 경건을 포함한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인식할 수 있었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경건까지 포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걸 창조하시고 우주를 운행 보존하시고 인류를 보호하시고 보살피시며 모든 선한 것과 지혜와 의와 능력이 그로부터 나오며 그 분께서 모든 것의 원인임을 앎에서 나오는 합당한 반응, 감사와 두려움과 사랑과 복종까지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 칼빈은 '아담이 혹 계속 의로운 상태로 남아 있었을 경우 자연의 질서에 이끌림을 받아서 우리가 갖게 되었을 그런 단순하고도 원시적인 지식'을 말하는데 구속사적으로 이런 지식을 생각하는 것이 합당한가?

=> 이러한 창조주에 관한 지식은 역시 성경에서 증거하는 것으로 말미암는 것 같다. 타락 이후 구속사의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시편과 욥기와 이사야서 등에서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 또한 창조 때에 주어진 원리들, 안식일이라든가 남자와 여자의 결혼 등을 포함하고 있고 왈쉬와 미들톤의 '그리스도인의 비전'에서 보듯이 창조 때에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역할과 명령들도 우상숭배 금지 항목에서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빈은 타락하지 않았을 상황을 상상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타락하지 않았을 상황에 역시 주어지고 있었을 거란 상상을 하는 것이다.

 

1.2.2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신뢰와 경외로 이어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며 하나님에게서 선을 찾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 덕분으로 돌린다. 자연스레 경건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이러한 신앙은 두려움과 신뢰가 하나되어 공경심으로 나타나고 바르게 예배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은 별로 없다.

- 비록 지식으로 언급되었지만 칼빈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그런 지식이 아니다. 앎과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한다. 칼빈은 이것을 이성적인 이해에서 감정과 의지적 반응으로의 순서로 설명한다.

- 이제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은 왜 거의 없을까 하는 질문이 생겨난다.

 

1.3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의 마음속에 본성적으로 심겨졌음

1.3.1 본성적으로 심겨진 신에 대한 관념

앞에서 봤듯이 비록 경건한 자는 없어도 모든 인간은 신에 대한 지각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양심이 있고 종교성이다. 우상숭배라 하더라도 신적 존재에 대한 관념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에서 이 신적 존재의 관념을 제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3.2 종교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종교가 교묘하게 꾸며졌다고 주장하더라도 꾸며진 것을 믿으려 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 마음 안에 종교성을 입증한다. 또한 아무리 신을 멸시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양심과 두려움은 신에 대한 관념이 존재함을 입증한다.

- 하지만 현대의 무신론은 훨씬 합리적으로 발전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그럴듯 하게 들린다. 이에 대해 칼빈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1.3.3 신에 대한 지각은 없어지지 않는다.

신에 대한 지각은 모태에서부터 습득하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려 안간힘을 다하지만 본성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 3장의 논의를 종합하자면 종교성, 신에 대한 관념은 모태로부터 본성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없어지지 않고 항존한다.

 

1.4 무지에 의해서나 악의에 의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짓눌리거나 더렵혀짐

1.4.1 하나님을 상상하여 꾸며냄

- 칼빈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신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으나 왜 경건한 자는 없는지를 탐구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만과 완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알지 않고 스스로 상상하고 꾸며낸 하나님을 안다. 이것은 그들의 완악한 오만함에 기인한 것이므로 핑계할 수 없다.

 

1.4.2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함

다윈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 14:1; 53:1)라고 했다. 이렇게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하늘 속에 가둬 인간과 상관없이 만들려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에 대해서도 부인한다. 하지만 아무리 어리석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완전히 잊을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경건에 속한 두려움이 없어 바보같은 상태가 계속된다.

- 이런 바보들은 스스로 어리석어져서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에 결코 핑계치 못할 것이다.

 

1.4.3 진리와 결합하여야만 참된 종교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신을 기쁘게 하는 미신이나 우상숭배에 빠져 오히려 하나님을 조롱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 자신의 모습 그대로 계신다. 따라서 '진리와 결합하지 않는 신앙은 결코 순전하다 할 수 없다.'

- 하나님은 '거기 계시며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하신(즉, 진리) 바로 그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은 모두 순전하지 않으며 미신이며 우상숭배이다.

 

1.4.4 외식하는 자들의 불경건

또 하나의 가중되는 불경건이 있는데 바로 외식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할 뿐더러, 자발적 두려움과 경외로 인한 경건이 아닌 하나님의 심판을 끔찍히 싫어하여 하나님께 환심을 사는 외식을 일삼으며 자신들의 욕심을 탐닉한다. 이것은 그저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반역이 아니다. 반역을 저지르고 시시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누그러뜨리고 더욱 자신의 범죄를 가중시킨다. 이것 역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나 다른 피조물을 더욱 의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은 거꾸로 신에 대한 지각이 본성적으로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 칼빈은 미신과 우상숭배보다 외식하는 것을 더욱 악한 것으로 보는 것 같다.그 이유는 외식하는 것 역시 자신이나 다른 피조물을 의지하는 우상숭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5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주의 창조와 그 지속적인 운행에서 분명히 드러남

1.5.1 하나님의 영광의 증표가 세상 만물에 분명히 새겨져 있음

- 칼빈은 이제 본격적으로 진리, 특별히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하려고 한다.

복된 삶의 최종적인 목표가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 요 17:3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아무도 복을 접하는 데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 마음속에 종교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고 또한 우주의 구조 전체 속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셨고 날마다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신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 1:19-20)

 

1.5.2 하늘과 땅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의 증거

하늘과 땅에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선포하는 무수한 증거들이 있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좀 더 깊게 알 수 있으나 배우지 않은 자라도 그것을 놓칠 수 없다. 인간의 몸 또한 하나님의 탁월하신 지혜를 선포하기에 충분하다.

 

1.5.3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의 탁월한 증거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사람을 가리켜 소우주라고 한다.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과 지혜를 드러내는 희귀한 실례요’, ‘다윗은 인류가 창조주의 솜씨의 명확한 거울임을 선언한다.’(시 8:2, 4) ‘아직 어미의 젖을 먹는 어린 아기들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훌륭한 혀를 갖고 있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을 발견할게 될 텐데,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나태한 것이고,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다.

- 칼빈은 시편 8편에 나타난 하늘을 바라보고 사람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다윗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듯하다.

 

1.5.4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른 것으로 대치시키는 교만한 사람의 배은망덕함

그러나 여기서 자기들 속의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보화들이 저장되어 있어 스스로 우쭐해지고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똑똑히 보도록 주어진 그것들을 자기들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배은망덕함이 드러난다. 자신들 속에 심겨진 신격의 씨앗을 이용하여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짓누르는 것이다. 특히 에피쿠로스 철학을 따르는 자들은 자기들이 짐승들과 다른 것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 대신 “자연”을 우주만물을 지은 존재로 대치시킨다.

- 게다가 현재는 인간 자신들도 짐승들과 다른 것이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믿으니 더욱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만 간다.

 

1.5.5 창조주와 피조물을 서로 혼동하는 오류

또한 칼빈이 더욱 크게 문제 삼는 것은 영혼의 존재와 기능을 부정하고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 혹은 허구에 불과한 신적 존재를 경외하는 것이다.

 

1.5.6 우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이 그를 바라보게 함

- 이제 하나님의 지혜뿐 아니라 그 분의 권능 또한 우주에 나타나 우리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다.

자연의 모든 현상과 우리에게 심겨진 재능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권능에 이끌려 그 분의 영원성을 생각하게 된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그 분은 스스로 존재하며 영원하시다. 그 분의 창조와 보존의 원인은 선하심에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에 있다.

 

1.5.7 사람을 향한 섭리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께서는 일상적인 자연의 경로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로 자비롭고 은혜롭게 역사하시며 경건한 자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푸시고 악인과 범죄자들에게 엄하게 대하신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8 하나님의 탁월하신 지혜와 권능으로 인간의 삶을 주관하심

이러한 긍휼하심으로 불쌍한 자들을 놀랍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는 악인들이 망하고 억눌린 자들이 구원받고 연약한 자들이 승리하는 것에서 그 탁월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방식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신다.

 

1.5.9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올바른 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저 헛된 사색을 만족시켜주며 머리에만 합당한 그런 지식이 아니라, 정당하게 받아 마음에 뿌리를 내려서 열매를 맺게 되는 그런 지식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가장 온전한 방법이요 또한 가장 적절한 순서는, … 그가 친히 우리에게 가까이 친근하게 다가오시고 또한 어떤 점에서 자기를 전하시는 바 그의 역사하심 속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이다.’

 

1.5.10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목적

우리는 이런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미래의 생명에 대해 소망을 갖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나타나는 것들은 미숙하고 불완전하며 내세에 완전히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 인류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도록 초청을 받고 있으며 또한 이 지식의 결과로 참되고 완전한 행복을 누리도록 이끌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우리가 인정하는 것은 우주에 나타난 하나님을 아는 지식 뿐 아니라 그 지식에로 이끌림을 받는 것까지 포함한다.

 

1.5.11 우주와 인간사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바르게 아는 사람이 없음

그러나 우주와 인간사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는 사람들은 없다. 플라톤을 비롯한 철학자 집단 전체가 그렇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대중들 역시 말할 바가 아니다.

- 플라톤의 공은 무엇인가?

 

1.5.12 끝없는 오류로 인한 미신과 철학

‘끝없이 더러운 오류의 진흙창이 온 땅을 가득 덮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의 신을 갖게’ 되었다. ‘사람이 오로지 자연을 통해서만 가르침을 받게 되면 … 모순된 원리들에 얽매여서 알지 못하는 신을 예배하는 현상에 빠지고 만다.’

 

1.5.13 오류로 인한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죄책

이렇듯 사람들은 오류를 범함으로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께로부터 스스로 이탈한다. 성경은 이를 정죄하며 율법에서 가르침 받지 않은 모든 자들은 죄책을 지고 있다. 인간에게 속한 모든 것이 이러한 오류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자기 자신을 증거하셔야만 하는 것이다.

 

1.5.14 하나님의 영광이 자연에 밝히 나타나 있으나 사람은 계속해서 오류를 범함

‘피조 세계가 그 지으신 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렇게도 많은 등불을 밝히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그저 헛될 뿐이다.’ 히11:3을 보면, ‘믿음으로 하나님의 내적 계시의 조명을 받지 않고서는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창조 세계에 분명히 드러나 있지만(롬 1:19) 사람의 분별력으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핑계할 수 없음을 보여줄 뿐이다.

 

1.5.15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처신은 변명의 여지가 없음

‘우둔함의 허물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변명할 수 없고, ‘무지를 핑계로 변명한다 해도, 그 순간 우리의 양심이’ 언제나 우리를 책망한다. ‘말없는 피조물들조차도 목소리를 높여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변명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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